2월부터 멈춰있던 생활이
하루하루 지나 벌써 4월이 되었다.

화훼업계 다큐를 보니
이번 코로나로인  해 큰 타격을 입었다고한다.
작년 대비 손해가 80% 정도 되고,
공판장에서도 꽃을 출하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다고 했다.
그렇게 출하시기를 놓친 꽃들은
결국 갈아엎어진다고 했다.
실제로 경매에 실패한 꽃들은
그 자리에서 잘려나가 폐기되는 장면까지 나왔다.
한창 성수기였어야 할 2월, 3월이
졸업식, 입학식의 취소로 판매가 줄어들었고,
행사나 모임의 취소로 꽃 판매가 저조하다고 했다.

뉴스를 보니 각 지역마다
악화된 소비경제로 많은 화훼업계 소상공인들이
영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그렇게, 2월/3월이 지나고,
2번째 성수기이자 마지막 성수기인
5월 가정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
이 시즌은 나의 사업에도 성수기인 날이다.

 

 


각 지역마다의 행사와

백화점/마트 프로모션, 브랜드들의 고객 유치 이벤트 등
캘리그라피행사가 진행된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 진행되는 일이기 때문에....
올해는 진행되지 않아 나에게도 큰 타격을 주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모이지 않는 곳에서의 일은 무엇이 있을까?

 

 

2년 전부터 오프라인으로 판매하고 있는
카네이션 액자를 온라인으로 옮겨와볼까 한다.
인스타그램을 통한 DM폭주 사례는 작년이 처음이었다.
준비되지 않은 배송으로 퀵이 가능한 곳을 제외하고는
판매할 수 없어서 너무 죄송했다.
올해는 더 완벽하게 준비를 해서 스마트스토어를 오픈하고 싶은데
과연... 꽃 소비가 있을까 싶다.


꽃을 구매하고, 그것을 재가공해서 판매가 이뤄지면

같은 소상공인을 도울 수 있는 일이 될 것 같은데...
적자만 남길 일이라면,  고민이 필요한 것 같다.

 

 


작년에는 가볍게 판매를 진행했다.
이전에는 프랑스자수와 함께 공방을 운영해서
협업으로 새로운 상품을 기획해서 인기를 끌었다.
자수브로치로 캘리그라피 액자를 하는 곳은
우리가 처음이었고, 5월 막판에는 따라 하는 곳들이 등장했다.
새롭긴 하나 판매자로서의 이윤을 남기는 상품이 아니었으므로
'우리는 비교적 괜찮았다' 라고 결론을 내렸다.


올해는 유별란글씨공방이라는 새로운 사업장을 오픈했고,
단독으로 상품개발과, 판매, 교육을 동시에 해야 하는데
과연 가능할지 모르겠다.

 

@유별란캘리그라피    https://blog.naver.com/yubyulran    카피,변형, 공유 하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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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를 잘 써야 하는 건
당연히 갖춰야 할 내 직업으로서의 자존심이고,
얼마나 더 가치 있는 상품으로 만들지는
내가 몇 주간 연구해야 할 몫인 것 같다.

일 벌이는 거 참 좋아해서
이번 주에는 양재 꽃 시장에도 다녀와야 할 것 같다.
카네이션 준비하면
집이고, 작업실이고 온갖 꽃들을 펼쳐놓는 나인지라
우리 부모님은 카네이션 원 없이 본다고,
(어지르지 말라고) 좋아하신다.


판매를 결정하면,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도 시작하게 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 공방에서 소소하게 교육을 진행하거나
매장 판매를 해야겠다.
작년과 같은 경제상황이라면 무조건 뛰어들 텐데
바이러스가 내 행동력을.. 멈춰세우네.

예술공방업에 종사하는 나는
판매보다, 나의 예술활동보다
교육을 주로한다.
글씨를 써도 쓰는 방법을,
그림을 그려도 그림그리는 방법을
정리하면서 하는게 습관이다.
내그림보다는 남에게 가르쳐주기위한
그림을 그리다보니....
온전히 나만 소유할 수 있는 그림이 없다.


그래서 가끔은 나도 학생이 되어
다른분들의 공방에서 수강을 한다.


많은 분들은 공방을 하면서
왜 또 공방에 다니냐는 질문을 하는데
배움을 즐기는 사람들이
보통 공방을 하기 때문에...
여러분야로 관심이 많다.
늘 허락을 구하고 해야하는 동종업계지만
대부분 협업도 하고, 서로 성장하는 기회로 삼는다.
그래서 우리공방 수강생중에
예술공방업에 종사하는 다양한 분들이 계신다.


내가 다녔던 곳 중에
진짜 오래 다니고 싶은 그런 작업실이 있었다.
다리부상으로, 4층 작업실에 계단을 오를 수 없어
중단하게 되었고, 다 나아서는
자리가 없어서 다닐 수 없게 되었다.
흑흑 아쉽다...
나도 수강생으로서 
쌤께 의지하는 그 시간이 엄청 행복했다.


오늘도 출근해서 수업을 마치고,
그림타임 전에 잠시 티스토리를 작성중이다.
일찍 끝나서 달달한 오후~
오늘은 레몬그리기를 다시해봐야겠다.

유별란그림/캘리그라피 - 카피/변형/공유 x

< 레몬 그리기 >

스케치 없이 수채화하기를 배우면서
3시간안에 1작품을 완성할 수 있게 되었다.

레몬을 보면서 자유롭게 구도를 잡고,
내 머릿 속 스케치대로 그리기 때문에
누가 따라할 수 없는 그림이 된다.
그래도 그동안 나만의 그림을 부지런히 그려서
액자에 걸어놓으니 뿌듯하다!
어쩔 수 없이 수업이 줄어든 요즘....
뭘 배울까 생각중이다.
이왕이면 같은 공방업종에 계시분 수업을
등록해야겠다. 
공방업 화이팅!♥︎





2년 전 추석날 아침.
할머니댁 계단에서 발목을 접질린 바람에...
응급실에 갔고, 수술 처방이 내려졌다.
걸음마 이후로 30년 가까이를
오르내린 계단에서... 어이없는 사고였다.
마침, 사업에 있어서도 중요한 일들이 잡혀있었다.

놓치면 후회할 것 같은 기회들.
수술 후 그날까지 어떻게든 혼자 움직여야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통깁스와 목발, 휠체어에 의존한 채
롯데타워부터 서울시청 앞 호텔 컨퍼런스까지
먼 길, 무사히 일을 다녀올 수 있었다.
이날 처음 목발을 사용했고, 첫 외출이었다.
휠체어를 세미나실 뒤에 숨겨놓고,
목발로 최대한 빠르고, 힘든 티 안 나게....
어디서 초인적인 힘이 나왔다.

그렇게 일정을 소화하고,
통깁스채 외출을 해서 피부병까지 더 악화돼
대학병원 피부과에서도 비명을 지른 환자가 되었다.
뼈를 깎는 고통이라는 게 이런 건가
이전까지 아팠던 건 아픈 것도 아니었다..
아마 내 인생 중 가장 강력한 멘탈이 필요했다.
그렇게 3개월의 휴식기에 들어갔다.


마치 한 사람의 인생을 보는 것 같은 과정이었다.
나는 정말 많이 아픈데
간호해 주는 사람들의 말을 따르지 않을 수도 없었다.
혼자 할 수 없으니 무조건 복종이었고...
감옥에 갇혀있는 죄수 같다는 생각도 했다.
사고 상황이 계속 기억이 나고,
위험한 생각도 많이 하게 됐다...
지금도 그 생각을 했던 게 기억은 나지만
그 느낌과 기분은 전혀 기억나지 않아서 다행이다.
강력한 진통제 탓이라고 들었다. 참 다행이지...

그렇게 봄이 왔고,
난 더 열심히 재활을 해서
몸도 마음도
건강해질 수 있었다.

그해 10월.
핀 제거를 위해 또 수술대에 올랐다.
다행히 빠르게 회복을 했고,
우리공방 수강생들의 응원과 병문안에
감동하며 열심히 재활을 했다.
내 인생 최고의 감동 포인트다.
일을 하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인데...
일이 있어서 빠르게 '나'로 돌아올 수 있었다.
스승과 제자라는 관계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였고,
2020년 4월이 된 올봄에도
함께하고 계신 울 수강생님들이 넘 고맙다.

그렇게 이겨내느라
느끼지 못했던 핑크빛 봄
올해도 벚꽃 구경 한번 가지 못하게되니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이런 경제 위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바뀌는 건 없으니
부지런히 움직여야지. 
그때처럼 나는 오늘도 조금씩 걸어가고 있겠지.

작년 봄에 썼던 글씨.
어떠한 좋은 말도 아니고,
재활이 느리다고
걷는 연습 많이 하라고 해서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면서 거기를 목적지로
열심히 걸어가서 썼던 글씨다.
이거 쓰고, 택시 타고 돌아왔다ㅎㅎㅎ
네이버 블로그에 재활일지 쓰려고 모아놓은
이미지들이 아까워서 티스토리에 게시해본다.

 

우리공방에서 5분 거리에
노원문고가 있다.
스타벅스, 커피빈과 이웃인 다음으로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요즘 내 단골집.
이 책도 내 단골집에서 구매했다.


90년 생이 온다 , 임홍택
<웨일북스>

주변에 같이 일하는 언니, 오빠들이
이 책이 인기라며 세대별 차이에 대한 생각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길래
"저도 90년생이에요."
했더니 뭔가 나는 그런 느낌이 아니라고 했다.


나는 이 책 속에서 꿈꾸는
워라밸이 있는 삶을 꿈꾸지는 않는다.

나는 꿈을 위해 책에 나오는 워라밸을
자발적으로 포기하고 있는 90년생이니까...



나의 첫 사회생활은 76년생 비교적 젊은 대표님이
운영하는 디자인 회사에서 시작됐다.
대기업에서 경험했던 싫었던 점들을 다 반영한 회사였다.
-
1. 주 4일 근무,  오전 11시 출근, 회식은 없음.

2. 일이 많아 야근이 있다는 것은 
     일이 없을 때는 퇴근시간 전이라도 진정한 칼퇴가 가능.
    (11시 출근해서 12시에 밥 먹고, 1시에 퇴근한 적도 있다.)

3.  웃으면서 퇴근하는 순서에 직급 따위는 없음.
4. 퇴근 후에는 연락하지 말 것. 급한 일은 대표님께만...
5. 심부름은 사다리 타기, 질리면 가위바위보.
6. 업무 외 관여 절대 안 하니 취미생활도 각자 알아서.
7. 회식비 대신 점심시간에 테이크아웃 커피로.

회사가 크지 않아서 가능했을 수 있지만
거래처 큰 기업들과 일하면서 을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이런규 칙이 지켜졌던 거 보면... 대표님이 정말 대단했던 것 같다.
그래서 항상 여기가 나의 40대 때 직장이었으면 참 좋겠다.
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여기가 첫 회사라 이 조건에서도 불만은 있었던 것 같다.



처음 직장인이 되면서 시간이 많아
취미생활하는 법을 배우고,
그렇게 처음 배웠던 캘리그라피가......
나의 두 번째 직업이 될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 못 했다.
심지어 나의 스승님조차도
지금 이 일을 하는 내가 참 의외라고 하셨다.
다른 직장인들처럼 퇴사 욕구나 스트레스로 가득 차지도 않았고,
글씨에 열정 불태우지도 않고, 여유로워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좋은회사에 다니나보다 했다고 한다.
나의 스펙 채우기보다는 즐기고 싶어 했기에
흥미를 잃지 않고, 꾸준히 하다 보니 이렇게 된 것 같다.

이 좋은 회사를...
또래의 20대처럼 더 배울 것이 많은 곳으로,
연봉이 높은 곳을 따라 이직하면서
주 5일에 야근과 일폭탄이 있는 평범한 생활도 경험했다.
( 더 좋은 곳으로 이직했다고 축하도 받았다. 과연 더 좋은 곳인가?)


그렇게 꿈을 키워 주 6일을 스스로 자처하고 있는
나란 대표..... 흑
책 속에서는 마치 워라밸이 있는 삶을
회사에서 만들어줘야 하는 조건인것 처럼 나오는데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닌
내 스스로도 충분히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행복하면 그것이 나의 워라밸이니
난 워라밸이 있는 삶을 사는 걸까?



 90년생인 나는 당연한 이야기들이라...
크게 흥미롭지는 않았다.
한 세대 위의 분들은 공감하면서 볼 것 같다.
우리가 2000년생들을 바라보듯이..
이제 우리 90년생도 꼰대이니까 :)

@90년생이온다 @유별란캘리그라피
@90년생이온다 @유별란캘리그라피

책에 대한 내용보다는
읽고 느낀 점, 경험한 이야기를 하는 게
더 재밌다.
아직은 글을 쓰는데 조심스럽고,
낯설긴 하지만... 쓰다보면 나아지겠지.
오늘도 이 부족한 부분을
캘리그라피로 채워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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